사용자 삽입 이미지

* 작성일 : 2006.03.22
* 별점 : ★★★★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영화들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화 중 하나.

몇년도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좀 어렸을때 이 영화를 TV에서 보여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저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고 웃었던 것 같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이다. 코미디라는 것은 일반적인 개그와는 달리 시대 풍자적인 요소가 강하지 않아 보이면서도 강하게 흐른다. 이 영화는 1936년에 발표되었고, 당시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표현했다. (그의 영화들을 되돌아 보면, 왠지 쓴웃음을 짓게 되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업, 노숙, 범죄, 노동자 파업 등… 눈부신 산업 발전의 찌꺼기로 배출되는 것들이다. 각광 받는 산업이 있는 반면, 그 이면에는 소외되는 계층도 생기게 마련이다. 근대부터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노동자들이 그 속도에 발맞추어 단순히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함으로 인해 생기는 후유증을 이 영화를 통하여 풍자한 것이다.

고용 창출이 많이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실업 문제도 심각해졌다. 오죽하면 감옥 안에 있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가 나태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만큼 일자리를 얻는 것이 어려웠다는 현실도 보여준다.

그가 반드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부랑아 소녀를 만나게 된 이후이다. 그녀와 함께 좋은 집에서, 좋은 식사를 하며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발상이지만, 역시 동기가 있으면 그만큼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누구든지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추구할 목표가 아닌가? ^^

이 영화는 확실한 결말이 없다. 두 사람이 손잡고 저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 뿐. 그들 앞에 환한 미래가 펼쳐진 채로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잘 될거야’라는 ‘희망’만 가지고 걸어간다. 희망 마저 없다면, 택할 길은 세상을 등지는 것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