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 별점 : ★★★★☆
* 일시 : 2007.08.10, 20:40
* 상영 : 대한극장 5관.


영화를 보기 전에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얼마나 광주 시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대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 감상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째서 15세 관람가였던 것이 12세 관람가로 확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예 전체 관람가로 확 넓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다. 또한, 당시의 민주화 항쟁을 이렇게 영화화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1980년 5월 18일? 사실 나는 정말 모른다. 유아 시절이었으며, 광주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TV에 전두환 대통령이 나오면 어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모아 '죽일 놈'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는 무슨 얘긴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머리카락이 없으신 그 '대통령 각하'는 어린 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나의 유년기는 5공화국, 청소년기부터는 6공화국이다. 특히 5공화국 때만 해도 반공 교육이 투철했던 시절이다. 단순히 '공산주의 = 나쁜 것'이라는 등식과 '민주주의 vs. 공산주의'라는 흑백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런 주입식 교육만을 받았던 세대였다. 그런 코흘리개 어린이들에게 '무찌르자 공산당' 수준의 전쟁 그림 일색인 포스터 그리기와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형식적인 글짓기를 강요했다. 반공 서적/만화는 필독 도서였고,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 했다. 책 내용을 좀 베껴써도 일단 내용만 반공적이면 점수는 잘 받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선생님의 심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웅변대회 역시 반공 일색이었다. 그런 교육을 중심으로 하던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을 '폭도'이자 '빨갱이'로 인식시키려 애썼다. 일단 다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빨갱이로만 인식되면, 그동안 반공 교육을 해왔던 효과로 자신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공식적으로 7+5년은 해먹지 않았던가?

그런 씁쓸한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그런 것들과 관계없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울컥거렸다.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은 마음이 벅차고 감동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지만, 내가 과연 이 영화를 잘 보고 그 감상문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 '화려한 휴가'는 감성적인 가치만으로도 참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죽은 동생을 바라보는 김상경의 넋나간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연민할 수 밖에 없었고, 이요원의 신들린 연기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이요원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수확이 있었다.

영화관에서 다 내리기 전에 다시금 찾아가서 보고 싶은 영화이다...
CGV 광고에서 이요원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부모님께 함께 보러 가자고 해볼까?